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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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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린 4윤

on 23 December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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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정약용 그는 누구인가?

-'모두 6남 3녀를 낳았는데,
산 애들이 2남 1녀이고 죽은 애들이 4남 2녀이니,
죽은 애들이 산 애들의 두 배이다.
아아, 내가 하늘에 죄를 지어 잔혹함이
이와 같으니 어찌할 것인가' 정약용의 말中

-1816년 6월에 형 약전이
유형지(흑산도)에서 사망하였다.
조선의 가람
정약용
정약용
인물탐구
조선의
가람
정약용

업적
-조선 정조 때의 문신
-
4세
천자문
-
7세
한시
-
10세
이전에 자작시를모아 [삼미집] 편찬
-10세 경사 를 읽기 시작함.
-
14세
여러 학자들과 교우
-
16세
성호 이익 선생의 유고를 읽음.

-이칭별칭:호 사암, 다산
-실학자, 저술가, 시인, 철학자, 과학자, 공학자
-정약용 3대저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정약용의
3대
저서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정약용
의 명언
유배지 에서
보낸 편지
다산초당
유배를 가게 된 이유
목민심서
가람
:영원히 흘러가는 업적을 남기는 사람
조금더...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형인 정약종이
성물을 숨기기위해 옮기다가 한성부 포교에게 적발됨
당연히 정약용은 초점의 인물이라
생각되어 정약전과 함께 체포됨
대부분의 사람들이 참수 당하였지만
신유년 1801년 천주교 박해에서 정약용과 정약전만 살아남음
결국 정약용과 정약전은 반대편의 표적이되어 유배를 가게됨 이시기에 천주교 탄압으로 가족은 고향에 남겨두고 유배길에 오름
정약용의 첫유배지는 경상도 장기였고 정약전은 신지도를 가게 됨
이해 11월 약전은 흑산도로 약용은 강진으로 가게됨
결국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 을 하였음
정약용의 금잔화
금잔화의 꽃말:이별의 슬픔
마지막까지 오랜 시간의 연구를 함으로써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 났고
안경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아픈 몸이였지만 저술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182책 503권을 저술하였고
이것은 거의 1년에 28권을 지필한것으로
조선의 학문에 키를 키운
정약용
이었다
<재빠른 천재보다 미욱한 둔재의
노력이 훨씬 무섭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또 부지런해라
그러면 못 할 일이 없다>

지금까지 발표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윤혜린,박소연
인터뷰 시청
사암 정.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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