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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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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tine Yum

on 10 Septem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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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그리스 로마 미술

그리스. 로마 시대 미술
최초의 그림들
로마 미술
lascaux 벽화
다산과 풍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at 오스트리아
선돌 Menhir
신석기 - 거석 기념물
BC 12c 도리아족이 이동을 완료할 무렵인 기원전 11세기부터 ~ 아우구스투스 시대까지(AD14년)
그리스 미술
BC 8c ~ AD 4c
Altamira 동굴 벽화
비종들소들
주술적의미
여성적 남성적 형상
탄생과 죽음과 재생의
신비로운 마법이 행사되는
장소- 동굴
maybe - 스텐실 기법
Cougnac
PechMerle
각배를 든 여인
프랑스 도르도뉴주
고인돌 Dolmen
Stonehenge
이집트 미술
BC 3000 상하 이집트를 통일하여 대왕국을 이룩한 제 1 왕조 창시자 Menes 왕으로 부터 ~ BC 4c 제 30왕조까지 그 뒤로 알렌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됨.
에게 미술
미케네 궁전 사자문
황금 마스크
1874년
트로이 발굴한
Schliemann이 미케네 지역 발굴
Cycladic art
modern , 기하학적 단순화
이집트의 조각
이집트의 건축
조각가 = He-who-keeps-alive
카 : 반신, 육체가 죽은 뒤에도 살아남는 것, 머물집이 있어야 함
헤시라 초상
멘카우레왕과 왕비
라호테프와 노프레드
기원전 2600년경
딸들을 안고 있는 아크나톤과 네르테티티
입상 : 한발을 앞으로
좌상 : 발을 가지런히
1871년 메이둠에 있는 마스타바의 한방에서 발견
인부들 도망감. 사실적 묘사 -> 헬레니즘, 로마시대 초상화에 영향
아메노피스
파라오 투탄카멘과 그의 아내
앙카시나몬
나르메르 왕의 팔레트
고대 이집트 제1왕조(B.C.3100경)의 봉납용 대형팔레트이다. 1898년 상이집트의 히에라콘폴리스애서 출토되었다. 표면에 나르메르 왕이 하이집트를 정복한 주제의 부조가 있다. 이집트 부조예술 최초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단일주권에 의한 전 국토 통일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자료로도 중요한 유물이다. 점판암제이며 높이 64cm, 카이로, 이집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마스타바 : 초기의 고대 이집트 왕조 때의 귀족의 묘. 묘실 위에 돌이나 벽돌에 의해 사다리꼴의 묘를 구축했다.
높이 138cm. 카이로, 이집트 미술관 소장
제세르 왕 의상
고대 이집트 부조상
http://www.cyworld.com/bellewoods/6839864
피라미드
신전
옆모습 얼굴+ 정면 눈모양 + 같은 방향의 발(왼발 두개) = 중요한 측면 위주, 생각하고 있는 사물의 완전한
형태
Terra Amata : 노간주 & 주황색 물감 유적 but 그림남아있지 않음
Niaux
메소포타미아 미술
지구라이트
크레타여인
기하학기 geomatric period
아케익기
클랙식기
헬레니즘기
신과 영웅, 그리고 인간의 이상적 아름다움을 재현
B.C. 11~B.C. 8세기
B.C. 7~B.C. 6세기
B.C. 5~B.C. 4세기
B.C. 3~B.C. 1세기
감상을 위한 예술의 시작
kouros
kore
Anavysos Kouros
크기
높이 1.94m
소장처
아테네 국립고고미술관
Pistoxenos Painter
거위를 타고 있는 아프로디테 at 대영박물관
Hercule tuant Lynos avec la lyre
미노아 문명의 전성기
BC 2200~BC 1500
미케네 문명시대
BC 1600~BC 1200
BC 1100
그리스가 소아시아
연안을 식민지화기
시작함.
BC 776
최초의 올림픽
경기가 개최됨.
BC 775~700
강력한 장갑 개발
아테네가 아티카의 도시
통일
그리스 알파벳 고안
이탈리아에 그리스
식민지 건설
호메로스 (일리아드,
오딧세이아)집필.
BC 621
드라콘이
첫번째 법전 작성.
BC 594
솔론이 아테네
민주주의의 기반다짐
BC 566
범 아테네 축제 확립
BC 546~BC510
아테네
참주정치 시대
BC 534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최초로 비극이
상연됨
BC 508
클테네스가
민주주의 개혁을 실시함.
BC 490
마라톤 전투를
시초로
페르시아 전쟁 발발.
BC 487
도편추방제 실시
최초의 희극 상연.
BC 460
히포크라테스 출생.
BC 447
파르테논
신전 착공.
BC 445~426
헤로도토스의
총 9권에 이르는
역사 집필.
BC 438
BC 431~404
BC 429
BC 399
BC 387
BC 336
BC 146
파르테논신전
페이디아스가
아테네 여신상을
봉헌함.
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폴로폰네소스
전생발발.
페리클리레스
사망.
소크라테스
사망.
플라톤
아테네에
아카데메이아
설립.
알렌산더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등극.
로마가
마케도니아와
그리스를
정복함.
그리스 건축의 진수는 신전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구조의 원리와 그것의 지묘한 해결로 인하여 이후 오랜동안 유럽건축의 규범이 되었음. 그리스 신전은 ‘신의 집’이며(⇒나오스)신상을 모시는 장소이지 기도나 설교를 위한 장소가 아닌 것이었으므로 내부의 공간 보다는 외향을 존중하였음. 신전은 수백년에 걸쳐 그 기본형을 바꾸지 아니하고 오직 그 각부의 비례, 부분과 전체의 균형의 세련, 시공의 치밀과 완벽을 추구하였음. 이 일정한 전형 가운데 무한의 미묘한 변화를 성취해나가는 것에서 그리스 미술전체로 통하는 특질이 있음. B.C. 8세기에 이미 그리스 신전은 그 기본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초기의 신전은 나무와 일건연와(日乾練瓦)로 지어졌으나 B.C. 7세기 말경부터 석재가 차츰 사용되게 되었으며 또한 이 무렵부터 도리스식 및 이오니아 식 건축양식(오더)이 각기 독자적인 발전을 시작함. B.C. 630년 경의 테르모스(신전 C)에서 그 가장 오랜 예를 보이는 도리스 식 신전은 B.C 6세기에 펠로폰네소스와 마그나 그라에키아(시칠리아, 남이탈리아)에서 점차 그 규범적인 프로포션을 확립하여(코르프섬의 『아르테미스 신전』, 『코린토스의 아폴론신전』, 아이기나 섬의 『아피이아 신전』등), B.C. 5세기에 완성되었음. 특히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직후 B.C. 5세기 중엽에 세운 『파르테논』은 도리스 식 오더를 기조로 하면서도 일부에 이오니아식을 채용한 독창적인 고전(古典)중의 고전이라 할 것임.
The Temple of Apollo in Ancient Corinth
아르테미스신전 잔재터키. BC 8세기경에 세워진 이오니아양식의 신전.출처: doopedia.co.kr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
B.C. 6세기의 100년 사이에 오리엔트에게서 배운 직립 부동의 상으로부터 유기적 인체가 생동하는 표현 방향으로 곧장 그리고 줄기차게 헤쳐나갔음. B.C 6세기 초두의 『수니온의 코로스』로부터 『테네아의 아폴로』를 거쳐 B.C. 6세기 최종말기의 『아리스토디코스』까지의 코로스상에서 청년의 나체표현을 추구하였고, 『니칸드레의 봉헌상()』으로부터 『아크로폴리스의 코레』까지의 여성 착의상에서 옷무늬의 표현을 추구하였으며 또한 코르푸 섬의 『아르테미스 신전』으로부터 아이기나 섬 『아파이아 신전』까지의 페디멘트 조각에 있어서 삼각형의 군상()구성과 거기에 응하는 동작표현에 지능을 다하여 각기의 과제를 놀랍게 달성하였음.
라오콘
작가
아게산드로스, 아테노도로스, 폴리도로스

종류
조각

크기
높이 2.4m

제작년도
BC 150∼BC 50년경

소장
바티칸미술관
NIKE of Samothrace
Venus accroupie ou Venus pudique ou Venus honteuse; d'aprs l'Antique
점차 부동화된
입상 형태를 벗어나
순간의 찰나적 동작을 조각
하기에 이름.
트로이전쟁?BC 1250?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37742&mid=2624
B.C. 8세기~A.D. 4세기 간의 약 1천 100년 사이에 로마 인들이 지배했던 지역의 미술. 이 지배지역은 도시국가로서의 로마로부터 지중해역과 서유럽 거의를 차지하여 지배한 로마 제국까지 커다란 변천을 이루었음. 따라서 로마 미술의 추이를 더듬는데 있어서 기원 2세기까지는 그 중심지로서 일정한 완결성을 유지해온 도시 로마의 미술을, 그 이후는 속주(屬州, 프로윙키아)의 미술까지도 고찰해 보기로 함. B.C. 8세기~ B.C. 4세기 초두(왕정시대~공화정치체제 전기)에 걸쳐서는 이탈리아 중부지역의 일개 도시국가에 불과한 로마의 미술은 에트루스크 미술의 영향이 강하여 서로 구분을 짓기가 어려울 정도였음. 예를들면 로마 인의 최고신 유피테르(쥬피터)의 신전을 웨이이 출신의 우르카에게 장식시켰음. 단 근래의 연구로서는 이미 남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도시로부터 직접 그리스 미술의 영향이 있었다는 사실도 증명되고 있음(⇒마그나 그라에키아). 이에 뒤이은 제2포에니 전쟁 종결(B.C. 201)까지의 시대는 경제적 기반의 변천이라는 필연성에 근거한 영토확장 추진으로 인한 실질적인 윤리성의 확립과, 이미 충분히 발달한 남이탈리아의 그리스 미술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서, 미술상에서도 고유의 자연주의와 그리스로부터 들어온 고전주의가 병존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후의 로마 미술 전개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과제가 됨. 제2(B.C. 218~ B.C. 201), 제3(B.C. 149~ B.C. 146)의 양 포에니 전쟁간의 약 반세기 동안은 로마가 동 지중해의 그리스 미술과 상접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 미술가들이 로마로 이주하기 시작함. 그들 그리스 사상이 로마의 종교나 윤리상에도 영향을 미쳐 완결성을 지닌 세계관과 그 조형표현의 고전주의가 로마 미술에 본질적으로 작용을 가하기에 이름. 그 하나의 표출이 조상숭배를 축으로 한 초상조각이며 전통적 종교관의 변질이 그 반동으로서 집요하리만큼 사실성으로 향하게 하여 ‘공화정(政)의 초상’조각이 많이 제작되었음. 이른바 『카피톨리노의 브루투스 상』(로마, 콘세르바토리 미술관)은 이러한 맥락 속에 위치하는 대표작임. 카토(Cato, B.C. 234~ B.C. 149) 등의 전통주의자들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공화정 후기는 그리스 고전미술에 대한 동경의 시대였음. 로마에서는 고전미술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없었어도 그리스 인 미술가들의 활약에 의해서 헤르모도로스의 대리석조 신전이나 티마르키데스(Timarchides, B.C. 180경)의 조각 등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전주의 작품을 볼 수 있었음. 폼페이우스(Pompeius Magnus, B.C. 106~ B.C. 48)나 술라(Lucius Cornelius Sulla, B.C. 138~ B.C. 78), 거기에 또한 카에사르(시저)의 활약은 헬레니즘 왕국의 완전지배와 그것을 능가할 도시 로마의 건설로 이르도록 함.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카에사르의 위업을 계승하면서 아그리파(Marcus Vipsanius Agrippa, B.C. 62경~ B.C. 12)와 더불어 제국관(帝國觀)의 구상으로 고전주의 미술을 채용함. 『아라 파키스』『프리마 포르타의 아우구스투스 상』, 콘코르디아 신전이 제정초기의 양상을 특징짓고 있음. 대도시로 성장한 로마의 구성하고 거기에 내재하는 다양한 요소와 가치관 중에서 본질적인 활동기반을 상실하고 교양주의화했던 네오 아티카 주의(⇒신(新) 아티카 파) 미술이 이러한 사회적 조건을 배경으로해서 보급되어 나갔음. 콘크리트 공법과 벽돌을 대건축에도 사용하게 되며, 그 본질적인 벽 구조에 의해 석조건축을 전제로 하는 그리스 건축의 오더는 그 구조성으로부터 해방되어 더욱 자유로운 건축장식의 요소가 되었음. 또한 도시건축에 있어서 방향성을 포기한 신전은 그 내부공간에서의 종교적 분위기를 의축(擬縮)하도록 의도하게 됨. 개인의 현창(顯彰)법은 전통적인 초상조각에 의존하는 외에 장대하고 호화로운 공공건축에 둘러싸인 중에서 높이를 구하여 개선문(기념문)이나 기념원주 등 새로운 건축의 장르를 낳게 하였음. 헬레니즘 미술의 개인주의와 귀족성은 로마 사회 안에서 더욱 발전하여 개인주택의 ‘미술관화’와 미술에 대한 취향의 다양화로 향하게 되었으며, 주택내는 벽화로 장식되고 헬레니즘 회화나 조각이 모사(模寫)되었음. 그 다양성 중에서 구하게 된 공통가치가 공예품의 기법이나 재질에도 나타나, 두들겨서 밖으로 장식을 표출되도록 세공한 금속기(예 : 『보스코레아레의 유보』, 루브르 박물관), 카메오 세공에 의한 장신구나 글라스 기(器)(예 : 『아우구스투스의 카메오』, 비엔나 미술사미술관; 『포틀란드 바즈』, 대영박물관), 음각(⇒인탈리오)에 의한 귀석 장식품(⇒젬) 등, 헬레니즘의 공예를 본질적으로는 계승하면서도 그 레퍼토리를 비약적으로 향상시켰음. 또한 아레초 도기 등을 새로 만들어 값 싼 로마 글라스의 제법을 발명하는 등 일용품도 크게 향상시키기에 이르렀음. 이러한 발전을 지탱시킨 것은 도시문명을 중심으로 한 로마 경제의 확대로서, 도시 생활자들 간에 있어서의 ‘유행’도 커다란 역할을 수행했던 것에서 연유됨. 회화는 건축 내부공간의 성격에 종속 되었기 때문에 회화공간은 스케노그라피아에서 비롯된 ‘고대원근법’과 ‘콤펜디아리아’로 당시 호칭되었던 묘사법으로 표현되어 분위기나 환경과의 일치를 도모하게 됨. 따라서 전통적인 신화화도 신화적인 풍경화로 변천되었는데 거기에는 『변신담(變身譚)』의 영향을 엿볼 수도 있음. 조각에서도 같은 추이를 나타내어 신아티카 파 양식의 보급은 엄격양식, 고전양식, 헬레니즘 양식들의 조각작품에서 조차 그것들을 카피(copy)하는 과정에서, 오리지널 작품이 원래 갖고 있는 내용을 제거해버리고 로마 사회내로 적응토록 하는데 성공함. 특히 폴리클레이토스 작품의 모조조각은 광대한 로마 제국 전역으로 확산 · 보급됨. 이 미술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 속에서 더욱 객관적인 표현방법이 황제의 사적을 기념하는 역사적 부조에 요구되었음. 공화정기(期)의 개선화에서 유래되는 이러한 부조의 장르는 고전주의 미술환경 안에서 초월성을 지향하게 되었으며 이탈리아의 전통적인 자연주의를 재발견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율리우스 크라우디우스 조(朝)에 이어지는 프라우이우스 조에서 이것이 현저함. 그 변천과정의 한 단계를 나타낸 것이 티투스 제의 개선문인 『유태 전쟁 개선식』의 부조임. 로마 미술은 도시 로마의 발전과 깊은 관련을 가지며 그 발전과정은 포메리움의 확대에서 구체적으로 볼 수 있음. 원래 새점(鳥占)을 치는 성역으로 규정되었던 포메리움은 시가구역으로 성격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슬라 이후의 황제들에 의해서 대체적으로 카피톨리움을 중심으로 동심원꼴로 확대되어 나감. 즉 종교적, 사회적 측면을 지닌 도시계획이었으며 이로 인해 습지에 불과했던 캄프스 마르티우스(마르스의 들(野), 현 나보나 광장 부근)도 포로 로마노 주변에 뒤떨어지지 않는 공공건축의 집중지역이 되었음. 같은 전통을 갖는 동방 속주의 제도시는 로마 도시 처럼 급성장에 따른 확장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므로 옛 건물의 재건으로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게 됨. 그러나 그와 같은 도시가 존재하지 않았던 북아프리카나 서구에서는 경제상의 발전에 상응하는 계획도시가 건설되어 포룸(공공광장)을 중심으로 한 격자꼴의 계획도시가 출현하기에 이르렀음. 도시건축의 확립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는 것은 네로가 세운 도무스 아우레아임. 그때까지는 공공욕장(⇒로마의 욕장) 등 외에는 쓰여지지 않았던 돔 건축이 궁전에도 채용되어 하드리아누스 제의 판테온에서 완성됨. 고대건축에 있어서는 이처럼 세속건축의 형식과 공법이 종교건축에 채택되는 일이 드문 사실로서 거기에는 종교와 세속, 양측의 최고위자로서 황제의 존재가 계기로 되어지는 것임. 한편, 도무스 아우레아는 밀도가 고도화된 도시내에서 광대한 정원을 갖춘 별장 건축이었으나 고밀도화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여 네로의 사후에는 공공욕장으로 개축되었음. 그러므로 하드리아누스 제는 그리스 건축의 고전주의와 로마 건축의 돔 · 곡선을 다용(多用)한 콘크리트 구조와 합치시킨 건축군(群)을 티볼리의 빌라(⇒하드리아누스 제의 별장)에서 실현한 것이 됨. 플라비우스 조 미술에 있어서 자연주의와 채색주의는 트라야누스 제 시대에 이르러 더욱 견고하여짐. 트라야누스 황제의 기념원주 부조는 각선을 많이 사용한 저부조로서 거기에는 사실적인 자연주의에 의한 전쟁묘사가 객관적 표현으로 명확히 나타나 있음. 자연주의의 대두는 하드리아누스 시대에 들어와 일시 중단상태로 됨. 그의 제국관은 특색이 있는 각 속주의 발전에 기초가 두어져서 그 독자성을 포섭한 제국을 건설하려 하였던 것임. 따라서 그 공적기념 미술에는 고전주의의 부흥이 엿보이는 한편, 속주에 대두되는 건축활동의 활발화는 동방과 북아프리카, 유럽의 각 속주에서 상이한 건축양식을 각기 전개하게 됨. 이 고전주의 부흥이 단명으로 끝난 후, 2세기 후반의 안토니누스 피우스 제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제 시대에는 다시 트라야누스제 시대의 자연주의가 나타나나, 객관적 사실적인 자연주의에 의한 표현과 내용 사이에는 변경(邊境)에서의 만족(蠻族)문제와 경제적 침체에 의한 사회적 불안에 기인되는 괴리(乖離)가 생겨남. 그 때문에 자연에 존재하고 있었던 조화가 상실되고 표현요소는 과장되어서 표현주의적 경향이 짙어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제 기념원주 부조에서는 이미 인물상은 형태력을 잃고 서술성에 종속되어 있음. 또한 콘모두스 제가 네로 제의 거상을 자신의 상으로 개조한 배경에는 2세기 말의 미술적인 배경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 3세기 전반(前半) 세베루스 조 시대의 미술은 이러한 경향을 더욱 전전시키고 있으나, 그 기반에는 미트라스 교를 비롯해 동방종교의 유행과 사회적 불안, 각 속주의 도시 로마에 대한 상대적인 대두가 있음. 갈로 로망 미술의 토착적 요소의 현재화(顯在化), 북 아프리카에서의 대토지 소유층이 지지한 모자이크와 동방속주의 바로크적 경향의 진전이 로마 미술의 큰 특징으로 되었고 도시 로마의 미술활동은 그들과 동일한 수준으로 되었음. 도미티아누스 제가 건설한 스프리트(스파라툼)의 별궁은 형해화(形骸化)된 고전성과, 그것으로 인한 거대성 지향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당시의 수많은 황제초상의 거대성과 과장된 위엄성이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음. 이러한 경향은 한쪽에서 『성 헬레나의 석관』(336~350년경, 바티칸 미술관)처럼 서술성을 추상화한 단순형태에 의한 상징화와 『루도비시의 대석관』처럼 표현대상을 형태나 구조의 복잡화로 처리한다는 2극화(二極化)를 진전시켰음. 막센티우스 제(Marcus Aurelius Valerius Maxentius, 재위 306~312)와 콘스탄티누스 대제 시대에 막센티우스의 바실리카와 같은 대건축이 건설되는 한편, 콘스탄티누스 제 개선문과 같이 그 부조 패널을 5현제 시대의 모뉴멘트로부터 전용(轉用)에 의지한 모뉴멘트가 출현함. 그로 인해 시대와 사회를 배경으로 한 참된 창조력의 쇠퇴가 현저하게 됨. 그러나 로마 미술의 그 형태 어휘를 초기 기독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에 전하여 그들의 표현범위에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에트루스크 미술의 영향
2차 포에니 전쟁 종결
BC 201년
고유의 자연주의와 그리스로부터 들어온 고전주의가 병존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에 있는 콘세르바토리 미술관(⇒카피톨리니 미술관)소장의 청동제 흉상. B.C. 3~B.C. 2세기의 에트루스크 조상(彫像)의 걸작품으로서, 모델은 B.C. 508년 왕정을 폐하고 로마 공화정을 수립하여 최초의 집정관이 되었다고 전해지는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Lucius Junius Brutus)라고 알려짐. 두부(頭部)의 날카로운 사실성은 에트루스크 미술의 특징을 보임과 동시에 로마 사회에서 초상조각상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 높이37cm. (⇒에트루스크 미술)
고전주의
Hermodoros의 신전
Marcus Vipsanius Agrippa
Timarchides
Statua di Augusto da Prima Porta
pomerium
Domus Aurea
Constantius Chlorus
Arch of ConstantineArch of Constantine
CAESER of roman c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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