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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 of 내 인생의 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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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jiho

on 22 Ma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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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Copy of 내 인생의 포트폴리오

독어교육과 소순혁 내인생의 포트폴리오 유치원 때 나의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1990/9/5 경기 성남태생

소 : 소리없이 방긋웃는 환한미소는

순 :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녀

혁 : 혁신과 함께 2000년대의 주역이 되길!

- 아버지가 태어난날에. 수원에 있는 새밀알 유치원

이라는 유치원을 다녔다.

유치원때 주로 바이올린을
키며 지냈다.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꿨으나 막대한 비용에 무너졌다.
- 스즈키 5권까지했다, 상당한 실력이었다.

항상 꾸러기 수비대

놀이를 할 때

똘기 역할을 맡았다. 수원의 효원초등학교를 다녔다.

학업이나 인생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마음껏 친구들과 즐겁게 놀 수 있던
나날이었다.

조숙한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떄
이미 사상과 육체가 완성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그때당시
썸씽이 있던 아이들을 추억한다. 수원 매현중학교를 다녔다.

교육열이 높은곳중 하나여서 일찌감치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주변친구들은 슬슬 바른 길을 벗어날때.

나는 삐뚤어지지않고 항상 전교회장을 하며

순수한 몸과 마음으로 정도를 걸었다. 군입대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2009년 8월 24일 헌병으로 입대를했다.

힘든 나날이었다. 전역 삼성가 뺨치는 순혁가 나는 이건희처럼 큰 회사의 회장이 되었고 ,

내 마누라는 리움 미술관같은 미술관의 관장을 하면서 작품생활을 하고,

내 아들녀석은 이재용처럼 만지기만 하면 다 손해보는 녀석이 아닌것에 감사한다.

내 딸은 이부진처럼 카리스마 있지만 이상한놈팽이는 안데려올것이고,

막내딸은 자살하지 않을것이다. 나의 출생 고등학교 시절 수원 효원고등학교를 다녔다.
수원 인문계중 최강이었다.
머리를 보다시피 별명이 효원사였다.
예체능으로 나가려고 했으나 친누나가 이미 선수를 쳐버려서 나는 닥치고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이성에게 관심을 배제하여 스님처럼 열심히 도(공부)를 닦았다.
하지만 이성에게 관심을 많이 쓴 학교보다 결과적으로 성적이 안좋았다.
우리는 혼란스러웠다. 한때 나의 꿈 나는 사실 신부님이 되는게 꿈이었다.

허나 내 욕구와 번뇌를 차마 이기지 못하였다.

베드로라는 내 세례명을 뒤로한체 대학의 길을 갔다. 전북대학교에 입학 내 인생의 봄날이 온듯 했다.

집으로부터의 자유(멀리온 이유중 하나다. 더 큰이유는 순대국밥), 공부로부터의 자유가 날 반겼다.

인생 최고로 재미있던 때이다.

만날 술을 먹으며 인맥질하는것이 너무 즐거웠다.
(군대다녀와보니 안남더라) 재밌는 동아리 생활 대학에선 좋은 친구를 못만난다라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내 경험상 이말은 썩 맞지 않는말이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난 이곳에서 많은걸 느끼고 배웠다. 내가 전역할때는 나때문에 분위기가 좋아졌다.
군대에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내 인생에 변화가 생겼다. 대학 졸업 내가 그토록 기다리던

대학을 졸업하는

순간이다.

드디어 나는 돈을 벌어

쓸모있는 사람이 될것이다.. 교생실습 복학을 하고 4학년이 되었다.

사범대인으로서 필수코스인 교생실습을 다녀왔다.

이걸로 인해 배운것은 아이들 가르치기는 쉬운것이 아니다라는것과 , 어렸을때 무시했던 교생들의 고통을 깨달았다. 직업선택의 기로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가업을 잇겠느냐

선생의 길을 가겠느냐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가업을 있겠다고 하였다.

나는 작은 회사와 공장을
갖게 되었다. 드디어 기다리던 결혼 평소에 만나왔던 여성과

결혼에 골인하였다.

힘든 연애였다.

앞으로도 걱정이다.

결혼은 미친짓이라고 하던데

사실인지는 앞으로 알게되겠지. 신혼여행 신혼여행은

지리를 복수전공했던 내가 항상 가고싶어하는 나라인

아이슬란드다.

나라 재정이 파탄나서 물가도 싸고 환경도 좋다. 내 회사 회사의 주가가
한번 바닥을 치더니
계속 오르기 시작한다.

인생은 항상 제로점으로
얼마든지 내려갈수있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면
상승뿐이다. 가족을 이루다. 어느새 나는 완전한 중년가장이 되었다.

아이들도 여럿이 생겼다.

좋은 사장과 좋은 아빠, 좋은 남편이
동시에 된다는것은 참 힘든일이구나

불효자인 내가 아버지의 고통을 뒤늦게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아버지의 어깨가 이리도 무거운것이구나.. 뒤늦게 라도 효도를 해드리고자
내 재산으로 부모님과 장인장모님께
집한채를 선물해드렸다. 내가 존경하는 기업인인 안철수씨 처럼 되길 꿈꿔왔는데

내가 제2의 안철수로 뽑혔다. 나도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 되야지. 그림그리기대회에서

대상받고 한컷 처음으로 밴드생활도 해봤다.


사진은 강재구 학우(스토커)

의 도촬 각종 동요대회에서도 입상을 하여 성악가나 가수의 꿈을 꿨으나 성대결절로 인해 끝냈다. 처음으로 연애란것을 해봤다.

많은 시간과 돈을 잃고, 속앓이를 했으나

그로인해 많은걸 배웠다.
첫사랑 업무중 슬펐다. 첫 아이를 가졌다. 다른부부들은 불임도 많고 유산도 많은데 다행이다. 기쁨과 무거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래도 최고로 키울것이다. 아이가 돈이나 연필을 잡길 바랬는데

내 입술을 잡아버렸다.

그래, 훌륭한 입술이 되거라! 포트폴리오란 단어에 뜻을 두어 만들었다.
포트폴리오란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을 시간별로 정리해놓은 앨범이다.

나는 나의 인생 한때 한때를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로인해 모든것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이다.
나는 나이들었을때를 생각하여 픽션으로 과거를 재구성 하였다.
나는 이렇게 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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