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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프레지 -4.19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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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민 임

on 29 December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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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of 역사프레지 -4.19 혁명-

반민주 항의 시위대에 50m 거리서 경찰발포

쉬어가기
[4·19 혁명 50돌]
4·19세대 ‘기억과 회한’
“투표함에 미리 자유당표…3·15선거 역대 가장 추잡”
“학생 시위에 시민 동참…경찰이 연행된 사람 격려도”

1959년 봄 대구 경북여고에 다니던 신구자(68)씨는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긴 말싸움을 벌였다. 교사는 신씨에게 “원고는 선생님이 써주고, 대학 갈 때 장학금도 나올 테니 이승만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웅변을 하라”고 다그쳤다. 신씨는 끝내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당시는 학생들에 대한 억압이 대단하던 땐데…, 그런 상황을 만든 대통령을 위해 축하 웅변 따윈 하기 싫었거든요.”

1년 뒤인 1960년 2월28일. 학생회장이 된 신씨는 “학생들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며 거리시위에 나섰다. 3월15일로 다가온 제4대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국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28일은 일요일이었지만, 대구에서는 이날 오후 2시로 잡힌 민주당 유세에 학생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등교한 학생들을 무작정 붙들어 놓고 있었다. 신씨는 “집에 보내주면 친구들과 곧바로 집으로 가겠다”고 교사와 약속한 뒤 학교를 빠져나와 유세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구 시내는 학교의 부당한 조처에 분노한 경북고·대구고·경북사대부고 학생들의 함성에 점령된 뒤였다. 이들은 대구 반월당을 거쳐 도청 근처로 행진하며 “민주주의를 살리고, 학원에 정치세력을 배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씨는 민주당 유세가 열리기로 했던 방천 방향으로 가다 경찰에 잡혔다.


4.19 혁명
그날을 기억하다

4.19혁명 일지
“승리는 짧았지만 5·18-6월항쟁 뿌리 돼”
2.28 대구 의거. "신성한 학원을 정치 도구화 하지말라"
3.1 삐라 사건. "부정선거 감행하면 백만학도 궐기한다"
제 4회 정,부통령 선거.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 당선.
3.15 마산 의거 "부정선거 다시하라"
최루탄이 눈에 박힌 김주열군 주검 바다에서 떠오름. 마산 2차 시위.
4월 17일
전국 시위 확대.
4월 11일
3월 15일
2월 28일
3월 1일
4월 18일
고려대생 3천여명 시위. "기성세대는 반성하라" 시위 종료 후 귀갓길에 정치 깡패들에게 급습당함.
4월 19일
4월 25일
4월 26일
7월 29일
서울 각 대학교 총 궐기. 경찰 무차별 발포. 주요대도시 계엄령.
전국 대학교 수단 258명 시국선언.
이승만 대통령 하야 발표. 제1공화국 붕괴
총선거 실시.
1960년 4월25일 이뤄진 전국 교수 258명의 시국선언은 이승만 대통령 하야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펼침막을 들고 행진에 나서는 모습.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제공
"하고 싶지 않아요."
다음의 그림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역사프레지방학과제
2625 임지민

4·19혁명 뒤에도 여전히 정권은 국민뜻을 외면하였으며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하였는데요
쉽게 그때의 일을 잊어버려 혁명정신이 훼손되는 지경이라고까지하니 혁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 아닐까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저)이상으로 더 알고 싶다면
http://blog.chosun.com/blog.screen?blogId=1406&menuId=280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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